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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의뉴욕생활과꿈

👩‍✈️ 승무원을 꿈 꾼 계기와 그 과정 본문

내 개인적인 생각

👩‍✈️ 승무원을 꿈 꾼 계기와 그 과정

JennyOh 2022. 1. 25.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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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승무원을 꿈꾼 계기는 

수능을 마치고 바로 파트타임으로 

한 피자 집에서 일을 하면서 외국인 커플을 상대하며

 

"나도 많은 외국인들을 만나면서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전 세계 여행을 하고 싶다.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사람들이 편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너무 좋다."

 

라는 생각에서 이 꿈이 크게 자리를 잡았었다.

 

 

비행 전엔 항상 사진을 한장 찍고 싶은 메이크업이 되곤 했다.

상업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영어에 관심이 많았고 영어 공부를 좋아해서

외국인을 보고 어렵게라도 의사 소통을 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승무원이 기내에서 사용하는 영어 회화 책을 샀었던 기억이 있다.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찾아보면 나올 것 같다. 

이 책들은 티켓팅 하는 영어회화, 그리고 기내에서 사용하는 영어 회화들 

그리고 기내 영어 방송들이 실려있는 외국 서적이었다.

 

그러면서 영어 공부에 심취해 있었다. 

심취한 만큼 효율적인 공부는 하지 못한것  같다... 아직도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거 보니 🙁 

 

나의 전공은 식품공학이었지만, 사대 영어 교육과의 수업을 부전공으로 

학위가 가능할 만큼 듣고 다녔다. 

아쉬웠던 점은 내가 자대에서 사대의 수업을 부전공으로 할 수 없어 그냥 

전공 외로 들은 수업일 뿐이있다는 점.

하지만, 내가 배운것도 많고 절대로 후회는 없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한 친구에게(이 친구가 나의 시야를 트게 만들어준 것 같다)

'호주 워킹 홀리데이' 프로그램을 들었고,

그 후로 나는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호주에 가기로 결심한다. 

휴학 기를 내고 6개월 동안 돈을 모아서 비행기 티켓이며 기본 생활 비를 준비했다.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도 항상 서비스 직종의 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

(주로 커피숍 파트타임 혹은 풀타임)

솔직히 많이 모아지지 않았지만, 

정말 기본 생활은 2달 정도 살 수 있는 만큼 모아서 갔다. 

그래서 가자마자 일자리를 구해야 했고, 한 집에 25명 정도 사는 집으로 이사를 가서 살았다. 

그러면서 많은 외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좋은 외국인 친구들도 만나게 되었고 많은 도움도 받으며 지냈다.

영어 회화가 편히 나오던 시절은 아니어서 일자리 구하는데 정말 힘들긴 했지만,

그 힘든 시간도 견뎌내며 시드니에서 5 개월을 잘 보내고 점점 재정적으로 힘들어질 때쯤.

캐내디언 친구를 통해 western Australia 로 가서 일을 (muffin break라는 곳에서)하기

시작하며 한국에서 일 해 봤던 바리스타 그리고 베이커로 돈을 많이 벌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시간당 페이가 AU$18.95 정도 되었는데,

이렇게 같은 일을 해도 해외에서 버는 돈이 한국에서 버는 돈과 차이가 크다 보니

한국에 돌아와서 그닥 일 할 맛이 나지 않았다.(적어도 나는 그랬음)

 

한국에 돌아와서 그 전에 같이 일했던 사장님이 브런치 카페를 개업할 건데 

나의 도움이 필요하고 할 수 있으면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았고

그러면서 내가 그 브런치 카페의 매니저를 담당하고 오프닝 멤버로서 

커피 메뉴며 동선 그리고, 서비스 영역들을 도 맡아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정말이지 무슨 일이든 잘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일에 전념했고,

 순천에 있는 외국인 선생님들이 브런치 카페라 정말 많이 왔었다. 

그러면서 나의 영어 실력을 발휘하여 승무원이 된 기분으로 사람들을 상대했다.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마음으로 -

 

그 때 당시만 해도 나는 나의 꿈에 대해 아무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서 꾸준히 준비했었는데, 점점 이제 나도 영어 말하기가 어느 정도 되니

인터뷰를 보기 시작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인터넷으로 에미레이츠 모집 사이트나 "승무원 카페"를 적극 활용해서 

인터뷰 후기며 언제 인터뷰 날짜가 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외항사를 꿈꾸는 사람들의 목표는 주로 

"Emirates Airline or Singapore Airline"

이었는데, 그 때 에미레이츠는 모집 공고가 정말 안 뜨고 있었고, 들리는 소문으론

"에미레이츠는 영어를 정말 잘하는 애들만 뽑아 간다. "

라고 들었었다. 

 

그리고

싱가폴항공은 얼굴이 에뻐야 한다는 얘기가 엄청 들렸다. ㅋㅋㅋㅋㅋ

얼굴 하면 자신감이 없던 나로선 싱가포르는 틀렸다라고 생각함... ㅜ

그렇다고 수술을해서 예뻐져야지 라는 생각도 없었다. 

수술이 무서웠다 수술하고 영영 못 깨어날 까 봐...

 

그렇게 인터뷰 날짜를 검색하다

"카타르 항공"

면접이 뜬  것을 보고 카타르 항공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카타르 항공은 바로 두바이 옆에 있는 중동 항공사였고 

에미레이츠와  맞먹는 규모로 크게 성장을 거듭하고 있던 항공사였다. 

 

면접 날짜도 떴고 잘 알고 있던 항공사는 아니지만, 열심히 공부를 해서 면접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면접이 부산 해운대 바로 앞에 호텔에서 진행을 했었는데 

이름이 뭔지 생각이 안 남.

2 천명 가까운  승무원 준비생들이 복도를 가득 채웠었다.

 

일단 처음에 나는 다시 호주로 돌아가서 거기에서 면접을 볼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는 기본으로 면접에 몇 천 명이 모이는 반면 

외국에선 훨씬 적은 숫자가 면접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남편이(그때 남자 친구였던) 한국에서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경제적인 부담도 없고, 또 해외에선 영어가 원어민들에 비해 훨씬 뒤처지기 때문에 

차라리 같은 한국인끼리 경쟁하는 게 나를 것 같다고 해서 

그리고 일단 기회를 놓치지 말고 도전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꼬집어 말해줬었다. 

 

정말 맞는 말이었다.

몇 천명이 모이는 면접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는 경험을 해 봐야 아는 것이었다.

 

정말 장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려서 나의 Resume를 건네면서 스몰 톡을 하는 순간이 왔는데,

그때 나의 면접 심사 위원의 화장과(아라빅 화장) 머리 스타일에 압도되어서 

경직이 되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인어공주의 문어 마녀 같았던)

그러면서 질문도 잘 못 들어 답변을 더듬더듬하게 되었고,

짧은 스몰 톡을 하고 나서 그대로 다시 내가 머물던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 

저녁 7시까지 기다려도 다음 날 인터뷰 오라는 전화를 못 받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뭐 인터뷰 기회조차 못 받아서 너무 아쉬웠다.)

 

이렇게 첫 면접은 쓰라린 마음을 

부여잡고 다음 인터뷰를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한 달 후 (8월 중순쯤 ) 다시 서울에서 두 번째 카타르 면접이 진행이 되었다. 

어디였는지 생각이 안 나지만, 꼭두새벽부터 가서 대기하고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나보다 더 먼저 와 있던 아는 동생이 자기 자리로 합류시켜줘서 

일찍 Resume를 내고 올 수 있었다. 

면접이 시작되고 2시간 안으로 Resume를 내고 다시 내가 지내는 호텔 방으로 온 것 같다. 

이때 면접 심사위원은 Katherine이었고,

그녀는 내가 호주에서 지낼 때 엄마처럼 잘 챙겨주었던 사모님과 비슷해서 

친근감이 많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스몰 톡에서도 나에게 미소를 보여주었던. 

다시 순천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내려가려 할 때쯤에 극적으로 전화를 받고 

다음 인터뷰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되었었다. 

총 3일에 걸쳐 인터뷰를 했는데

첫날은 Resume drop과 스몰 톡

둘째 날은 시차 시험, 에세이 시험, 암 리치 그리고 그룹 디스커션 등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셋째 날 파이널 인터뷰를 일대일로 두 면접관과 함께 이야기를 30분 정도 했었다. 

(솔직히 좀 오래되어서 그룹 디스커션이  둘째 날 했는지 셋째 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은...)

 

그렇게 파이널까지 하고 나서 한 달 정도 기다려서 합격 통보를 받았고

2011년 11월에 카타르행 비행기를 타고 카타르 항공에 조인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 발리 비행에서 크루들과 함께 

내가 승무원을 꿈꾼 계기와 첫 번째 면접까지 요약해 보자면

내가 승무원이 되고자 다짐하고 나서 했던 일들은 

피자집, 커피숍 그리고 호주에서 초밥집, 레스토랑, 머핀 브레이크

그리고 한국에 다시 와서 브런치 카페까지 모두 서비스와 연관된 직종들이었고,

영어 회화 공부에 집중해서 뭐든 배우고 더 배우겠다는 생각을 하며 일했었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라 

사람과 관련된 모든 일이 면접 보는데 유리하게 작용한 것 같다. 

그리고 외국 생활을 하고 특히 룸메이트나 외국인 들과 경험했던 것들이 

면접에서 좋게 작용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

 

 

혹시 외항사를 꿈꾸는 분들이라면 자기에게 맞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영어를 준비한다면 인터뷰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20살부터 꿈꿨던 일을 27살이 이루기 되었던 것을 좀 생각해 보자면,

영어가 많이 준비되지 않았어도 면접 경험을 쌓아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너무 그 ""(준비가 다 되었을 때)를 기다려서 늦게 면접 경험을 했었던 것 같았다. 

뜻이 있는 사람이고 이 길로 갈 수 있는 사람은 조금 덜 준비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면접관들이 "영어 공부 좀 신경 써야겠어. 그 부분 열심히 하고 있어"

라고 이야기해 놓고 데려가는 경우도 봤기 때문이다.(내 타이 룸메이트가 그랬다)

 

다음엔 꿈을 이루고 나서의 나의 복잡한 심정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꿈을 이루었지만, 허탈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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