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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의뉴욕생활과꿈
시어머니와의 관계 본문

시어머니와 관계가 틀어진 이유..
우리 부부는 처음에 결혼하고 뉴욕 퀸즈에 있는 어머님 집 반지하에서 우리의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2011년 11월에 카타르 항공에 취직해서 3년을 일하고 2014년 11월에 일을 그만두었다.
2013년에 신청한 미국 그린카드를 받는데 1년 반 정도 기다려 2015년 가을에 받았었고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어머님네서 15년 겨울에 살기 시작했다.
남편은 체육 선생님을 하고 싶어 했고 그 당시
substitute teacher(학교에서 선생님이 안 나오는 경우 그 자릴 대신하는 선생님)으로 일을 하고 있었고,
어머님도 일 마치고 오시면 오후 4시.
어머님과 잠자기 전까지 4시간 정도 보고,
어머님 쉬시는 날엔 정말 자주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많은 시간은 아니지만 매일 보는 것도 힘들었고,
특히 힘들었던 건 이혼하신 어머님의 시아버님 댁 험담에 대화는 점점 힘들어져만 갔다.
같이 하고 싶지 않고 되도록 눈에 띄지 않아서 대화를 안 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항상 시댁 이야기를 할 때면
남편한테는 이야기 하지 말라는 말을 당부했던 어머님.
그러면서 나는 자기 본인의 딸보다 더 딸같다를 연발하셨고...
순진했던 나는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어머님을 그냥 참아내고 있었다.
점점 힘들어지던 찰나, 내가 첫째를 임신했고
하고 싶지 않은 어머님과의 대화가 걱정이 되고 스트레스를 더 받기 시작했다.
어머님이 시댁 험담을 할 때 남편이 우연히 듣기를 바랐지만,
정말이지 밖에서 차가 멈추기만 하면 하던 이야기를 멈췄던 어머님.....덜덜;;
어머님께 대 놓고 뭐라고 말하면 그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서 말은 못 하고,
(정말 동방예의지국 한국에서 자란 게 이럴 땐 너무 힘들다)
남편과 결혼하고 서로 맹세했던 게 서로 거짓말이나 숨기는 것 없이 모든 것을 공유하자고 했었기에
3-4달 정도 참고 남편에게 말을 꺼냈다.
그 말은 들은 남편은 정말 화를 냈다.
그런 남편을 달래서 그냥 살살 이야기를 해주라고 지금 말고 다음에 얘기를 하라고 부탁했었다.
며칠 후 남편이 그 이야기를 꺼냈고,
그 이야기를 발단으로 어머님과 나의 사이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한 후, 임신 사실을 알렸는데 어머님 반응이..
"알고 있었어."
무덤덤한 투로 말을 하시고, 기뻐하지도 않으셔서 나와 남편은 기분이 좋지 않았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사시는 어머님께 먼저 말해서 큰 반응을 기대했었던 남편이었기에 실망감이 컸었다.
이러면서 내가 임신했을 때 어머님 때문에 속상했던 사건들이 몇 개 생겼다.
임신 4개월쯤이 되어갈 때, 나는 우리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너무 땡겼다.
어머님의 음식이 맛이 없지 않았지만,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그런 나에게 어머님은 자기가 만든 국을 자주 먹으라고 권유하셨는데
하루는 나에게 자신의 국을 권유하면서
"This is for the baby not for you. So have some."
하시는 게 아닌가....
내 배를 가리키며 제스처까지 보여주며 애기를 위한 거지 나를 위한 거 아니니 먹어두라고 하셨다.
뭐지?
굳이 저런 식으로 말해야 하나?
하면서 정말 맘이 상했고, 그런 어머님께 나도
"I will have some only for my baby."
라고 응수하면서 그날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남편에게 한 소리 들었던 기억이 있다.
-
그런 뜨뜨미지근 한 상태가 계속되면서, 하루는 저녁을 먹고
남편과 앉아서 내가 하는 라마즈 호흡법을 이야기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어머님이 나도 해봤다 하시며,
"라마즈 호흡법?! 그거 해봤자 도움도 안돼. "
하시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과학적으로 증명된 된 건데 꾸준히 해서 정말 잘 써먹는데 관건이다 했더니.
"(콧방귀를 뀌시며) 그래? 네가 아기 낳을 거니 한번 해봐라 그게 되나"
하는 게 아닌가?
남편과 나는 둘 다 뭐지? 굳이 또 저렇게 이야기를 해야 하나?
하며 서로 속상한 마음을 풀려고 밖에 산책을 나가서
엄마가 너한테 그렇게 말해서 미안하다며, 네 맘 다 이해한다며 이야기를 해줬었다.
-
또 한 번은 임신 막달인 나와 남편 어머님 그리고 도련님까지 윈덤에 간 적이 있었다.
윈덤에 가는 길은 두 길이 있는데
하나는 휴게소가 많이 구비된 고속도로
그리고 다른 하나는 화장실이 1시간 반에 하나 있는 외진 길이었다.
임신 마지막 달이면,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되는데
임신한 나는 배려하지 않고 자기는 외진 길을 좋아한다며
굳이 거기로 가겠다며 아들들과 싸우는 게 아닌가...
심지어 그날 도련님이
"임신한 제니 화장실 자주 가야 한다는데 왜 거기로 가려고 하냐"
했더니, 너희들 내가 원하는 농장 가판대에서 파는 마켓도 안 데리고 가고,
내가 원하는 건 하지도 않으니 굳이 오늘 그 파머스 마켓을 가야 한다고 하는 게 아닌가...
한숨을 내 쉬며, 내가 화장실까지 참아내며 그 길로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 더 사이가 이상해진 건 아이를 낳고 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내가 한심하고 바보 같았지만,
그때 내가 잘못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이렇게 되어갔다.
아이를 낳고 반지하에 왔는데, 이 반지하는 여름에도 내가 오들오들 떨 정도로 시원하고 추운 곳인데
11월 말이 아이 낳고 돌아온 집은 정말이지 얼음장 같았다.
처음 들어온 시댁에서 눈치도 보이고, 어머님은 한 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어머님 눈치가 보여 반지하 전체에 난방을 하지 않고,
아이와 내가 지낼 작은 방 한 곳에만 난방을 해서 지내고 있었다.
그 방에서만 나오면서 입김이 나오는 정도였으니, 정말 추운 집이었다.
남편도 난방도 안 해주고, 어머님도 똑같았다.
지금에서 남편이랑 이야기하면, 자기가 잘 못했다고 말하는데
자기도 그때 그렇게 행동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잘 모르겠다고 한다.
나는 아기 낳기 전에도 낳고 난 후에도 여러 번 어머님께 설명을 해 드렸다.
한국에서는 애 낳고 따뜻한 방에서 산후조리해야 한다고.
그래서 난방 안 하는 어머님이 지내는 1층엔 올라가기 힘이 드니,
아이 보고 싶으면 내려와서 보라고 말씀을 몇 번이나 드렸고,
손녀 보러 오시라고 일 끝나고 오시면 자주 말해 드렸다.
그래도 어머님은 내려오지 않으셨고,
그러면서 도련님이 오늘 애기 봤냐고 하면 올라오지 않아서 볼 수가 없다는 식으로 말을 했던 것 같다.
하루는 도련님이 남편을 불러내어
"형이랑 엄마랑 무슨 일 있으면 나는 무조건 엄마 편이라고
엄마가 손녀를 볼 수 없게 하는 이유가 뭐냐고"
했다는 게 아닌가?
워워

누구 때문에 그러는 건데 왜 우리 보고?
지금도 생각하지만, 나는 아이 낳고 내가 해야 할 최선을 다 했고,
어머님 보기 힘들지만, 그래도 아이 보러 오시라고 말을 자주 드렸었고.
그렇게 하지 않은 어머님의 아이 같은 행동에 주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저렇게 많은 갈등과 서운함에 어머님과 나는 더욱더 멋쩍어져 버렸다
이런 우리 관계에 대해 남편이 어머님께 제니랑 꼭 이야기해서 풀어라고 말을 했고,
그런 날이 왔는데 어머님은 나에게 무조건 적으로
"미안하다."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사과를 바라는 게 아니고, 내가 왜 마음이 상했는지.
어머님은 내가 한 무엇 때문에 마음이 상하게 되었는지
서로를 더 이해하고 그 마음을 알아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데...
그런 이야기 장은 만들어 지지도 않았고, 내가 뭐라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미안하니 다 잊고 다시 시작하자라는 식으로만 말을 하시고,
지난 과거는 풀지 않으셨다.
그날 나는 남편에게 성공적인 대화가 아니었다고, 어머님이 무조건 잘못하신 것도 아니고
잘 모르는 서로가 오해와 상처를 받아서 그것을 풀어줘야 하는데
풀어지지도 않았고, 너무 방어적으로만 하셔서 아무 성과가 없었다고 말을 했다.
남편은 자기 엄마는 항상 그랬단다.
괜찮은지 알았는데 뒤에 보면 괜찮지 않았다고...
내가 지금 걱정하는 것도 다 이 이유에 있다.
사람이란 게 서로 오해도 하고 기분 상하기 마련인데
더 중요한 건 그 마음을 서로 말로 이야기할 줄 알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없으면
그 사이는 불편한 그대로 유지될 뿐이다.
지금이 나와 어머님의 관계가 근본적인 문제는 풀리지 않은 상태로
우리가 당연히 자기를 모셔야 한다는 전제하에 그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하려고 하시고 계신다.
그런데 나는 지난 과거를 다 청산하고 서로 더 이해를 하고
앞으로 같이 살면서 불편한 게 있을 때는 서로 이야기를 해서 오해가 있으면 풀고
이해할 게 있으면 온전히 이해하긴 힘들어도 서로 불편한 감정을 들어주는 사이가 되고 그렇게 말하는 게
자연스러워져야 같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을 상담사를 이용해서라도 그 과정을 꼭 거쳐 나가고 싶다.
그래야 내가 마음 편히 들어가서 살 수 있을 것 같다.
어머님이 정말 우리가 같이 살기를 원하신다면, 이 과정을 잘 알아주시면 좋겠다.
아니면, 나는 들어가서 같이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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